통증이 쉽게 없어지지 않아서 다른 병원을 갔다. 역시 이곳도 수술을 권했는데, 더욱 적극적으로
수술을 권하며 나중에는 피까지 뽑으며 수술 일정을 잡자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 쉽게 낫는 것도 아닌 것 같다. 한달 넘게 통증이 있으니,... 외출하거나 작업할 때 진통제를
먹으면서 해서 그런지...
오후엔
그냥 걸어 다녔다. 재료 상자를 구입하러 외출 했지만, 지금 집에 들어가 봤자 통증과 불안함 때문에
아무것도 못할꺼 같아서 그냥 걸어 다녔다.
미간에 세줄이 생기는 걸 의식 할 때마다 평온한 표정을 찾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멍하니 아무생각
없어졌다.
저녁에 들어와서 밥을 먹고 나서도 속이 좀처럼 편해지질 않아서 대충 옷을 입고 산책을 나섰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다리 건너 신호등에 멍하니 서 있는데,
건너편에 보이는 액자집이 보였다.
이 곳을 지나갈때 마다 힐끔힐끔 홈쳐보고, 전에는 액자 값을 알아보기 위해 한번 들렀던 곳인데, 오늘은
무슨 생각에서 였는지 한번 들어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방 입구에서 들여다 보니 대행히 아저씨는 작업을 다 마치고 정리를 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내가 하는 콘테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콘테 작업을 위한 캔버스는 두텁고 올이 미세하고 얽혀 있으며, 신축성을 줄이기 위해 합판 작업화
할때 물을 작뜩 묻히고, 천이 더이상 당겨지지 않을 때까지 당겨서 타카를 박는데, 이 작업도 하루에
50호 1점당 두,세시간이 걸리게 된다. 어떤 경우엔 천이 찢어지기도 하고 합판이 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캔버스를 제작하는 방법을 활용해 볼 생각으로 이런 성질을 가진 캔버스가 있느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상냥하게, 얇고 아교처리가 되어 있는 단단한 아사를 가리키시면서 "이것은 동양화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쓰시는 건데, 이런게 적당하지 않겠느냐" 라고 하셨다.
난, 좀더 두껍고 뒷면이 젯소로 마감되어 영구성이 생겼으면 좋겠다 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다시 이것 저것을 보여주시면서 천 종류를 특징과 재질, 작업방법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결국 썩 맘에 드는 캔버스천이 없어서
혹시, 제가 사용하면서 콘테 작업에 적합했던 천을 캔버스 천에 하신 것처럼 아교 작업과 젯소 작업을
해 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보이시면서,
"저도 장사하는 사람이라 소량은 안되고 10마 정도면 제작해 드릴 수 있겠습니다."
가끔 선생님 이란 단어도 쓰시는데, 나이드신 분들께 그런 소리를 들으면 언제나 익숙치 않다.
이런 저런 대화가 오가면서, KIAF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는데, 우리나라 미술 시장이 호황이라고
하셨다.
종종 일요일에도 늦게까지 작업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 모습만 보아도 알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호황기가 반갑지는 않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이런 호황기 속에 어느 순간 침체기로 돌아서며 순식간에 미술에 대한 관심이 사그러들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요즘은 외국 작품 보다는 국내 중견 젊은 작가의 작품이 많이 팔리고, 학벌도 중요하다 하셨다.
보통 돈많은 고객들이 작품 보다는 "이 작가는 어디 출신이고, 어디 출강을 나가느냐" 묻는단다.
어디 학교 교수라면 너나 할 것 없이 2~3점씩 사가지고 돌아간다고 한다.
아저씨는 주변에 대학 졸업 후 작업실에 틀어박혀 작업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작업물이 너무 좋은데도
쉽게 유통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말씀 하시며,
나에게, "작업을 하면서 혹시 어디 출강을 하게 되거나 다른 일을 하더라고 붓을 놓지 않는게 그래도
가장 중요한 일 같다고, 그게 스스로가 이 길로 들어서기로 결심한 자세가 아닌가" 하며 이야기 하셨다.
당연한 말 한마디가 참 기분이 좋아졌다.
이야기를 마치고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제가 도움이 많이 되어 드렷으면 좋겠어요?" 라는 말이 너무나 고마 웠다.
실험삼아 중간 수준에 캔버스 천을 한마 살때도
"혹시 50호 크기를 맞추려면 10cm 더 필요 할테니, 더 드릴께요 10cm 더 주나 안주나 저한텐
똑같거든요"

오늘 울적한 마음에 나서며 들렀던 액자집 아저씨와의 대화에서 위안담긴 긍정적 힘을 얻은건
몇 년 만에 처음인것 같다.
낯선 사람에게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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