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아이
OLD CHILD

성유진 (Sung Yu Jin)

2013,12,14 ~ 2014,01,19

갤러리 아리랑
GALLERY ARIRANG
http://www.arirangallery.com/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1436-2 아라트리움 205호
(Aratrium #205 1436-2 Woodong Haeundaegu Busan Korea)


인터뷰 형식의 도록을 만들기 위해 한 큐레이터와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나중에 지인을 통해 전해 들은 말에 의하면, 나와 인터뷰 했더니, 옛날 이야기만 줄기차게 하더라고 했다. 그랬던가? 기억이 나지 않으니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인터뷰라는 것이 익숙한 것이 아니라서 나름 최선을 다해 한다고 했을 텐데(말하는 건 언제나 자신없는 일이다), 작품에 대한 거대한 담론이 담기지 않아 상대방에게 맥을 빠지게 했을지도 모른다.
내 그림을 이야기하려면,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내 작업의 일관된 주제는 ‘불안’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내 삶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나의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조금 멀리 돌아가야 한다. 열두 살 무렵,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대부분의 시간을 집이라는 공간에 머물렀다. TV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책을 읽거나,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때 내게 문학적 소양이 있었거나 사색의 깊이를 즐길 수 있었다면, 글을 쓰거나 철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모든 것에 회의적이었고, 자신을 부단히도 미워했다.

만약 10대나 20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지금 이 시기에 머무르고 싶다고 확언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시간들은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개인으로서의 자신과 사회적으로서의 자신이 무던히 충돌하던 시기였고, 우울증 과 불안이라는 것을 망치질로 꾸준히 두드렸다. 그러면서도 언제가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미약한 희망을 붙잡은 채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 다녔다. 지금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울증이라는 것도 불안이라는 것도 살고자 하는 버둥거림인지 모르겠다.
작업을 시작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에 눈을 돌리니 많은 사람들이 불안이라는 것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안고 가는 보편적인 특징인지도 모른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수없이 회자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나고 또 한 세대가 온다면, 이것에 대한 특징이 어느 정도 정의되지 않을까?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작업을 통해 치유의 과정을 겪지 않느냐고. 남들에 비해 불안을 바라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그것을 작업으로 옮긴다고 해서 치유가 되지는 않는다. 그저 이제는 그 상황을 한 발짝 떨어져 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인지도. 초조함과 고통을 동반해 오는 불안이라는 것이 자신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는 것 또한 말이다.
불안은 언제든지 찾아 든다. 아니, 찾아 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자리 잡고. 언제든 일어나 의식의 한 자리를 차지 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것이 의식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처음엔 저항하다가 순간 온 몸의 기운이 빠지고, 감각의 스위치가 꺼지는 기분이 된다. 카메라에 불투명한 필터가 끼워지듯 시야가 아득해진다. 그나마 시선을 유지할 힘이 있는 게 다행이다. 그런 순간이 오면 한때는 아스팔트 갈라진 틈 사이로 솟아나는 식물의 생명력을 찬양했던 한 인간이 이제 그것을 무심히 밝고 지나간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방대한 정보와 물질로 가득차 있다. 이런 것들이 소비를 조장하고, 지식 습득을 강요하며,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든다. 미디어에서는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외모를 아름답게 가꿔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충고 한다. 텔레비 전을 거의 안 보는 나조차도 식당이나, 터미널에서 텔레비전이 틀어져 있는 걸 멍하니 보고 있자면 어느새 설득 당한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인터넷은 어떤가? 이젠 집안에 틀어박혀서 평생을 살 수도 있다. 세계 각국의 뉴스를 접하고, 새로운 개념의 이론과 지식 들을 습득할 수 있으며,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다. 심지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기존의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다.

이렇게 풍요로운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왜 점점 공허해 지는 것일까?
친절하고 편리한 매체를 손 안에 쥐고서도 왜 점점 더 불편한 마음을 지니게 되는 걸까?
24시간의 하루를 보내는 동안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은 얼마나 될까?
길 위나 지하철 또는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스마트폰과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식당에서 서로 마주앉아 식사를 하면서도, 각자의 스마트폰을 보며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사회 현상을 비난하려고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저렇게 쉴 틈 없이 무언가를 주입하면, 나중에라도 찾아오는 자신의 시간 속에서 풀어야 할 것들을 언제 바라 볼 수 있을까? 사람과 사람간의 대화라는 것은 상대를 사람을 알아가는 부분도 있지만, 결국은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인데, 그것조차 차단시키는 모습이 내게는 놀라움을 자아냈다.

자살률이 높아지고,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점집이 호황을 맞고 있는 것은 자신의 미래가 불안정하고(우리는 미래지향적 인간일 거라는 가정 하에...), 현재에 만족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불안의 시기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의 시간이 사라져 가면, 그것은 전부를 차지한다.
생각하는 능력도 습관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나처럼 시간이 많은 사람도 무언가에 대해 골똘히 몰입하려면 의식적으로 그것을 응시하지 않으면 각종 매체의 유혹으로도 벗어나기 힘들고, 멍해지는 일이 많다.
내 작업이 불안과 우울이라는 것으로 출발하여 여전히 그것을 응시하는 것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10대와 20대를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시기로 남겨진 안타까움이 불안과 우울로부터 도피하고, 사고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불안을 바라보려는 의식을 놓지 않았다. 어쩔 땐 그것이 내 온몸을 장악 할 때도 있었고, 분석을 통해서 원인을 발견할 때도 있었다. 가끔은 처음으로 돌아가 우울증의 시작점인 유년시절로 거슬러 가기도 했다.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기만 하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울까 하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간 또한 고행이었다. 이 정도면 알 것도 같다라고 느낄 때마다 새로운 형대로 나타나곤 했다. 그 무게감을 덜기 위해 일반화해보기도 했다.
여전히 그 과정 속에 있지만, 크게 변한 부분이 있다. 불안이나 우울이 해충과 같이 박멸의 대상이 아니라 나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없애는 것도 불가능 할 뿐 더러,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불안이 다가오는 감도를 느끼는 감각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너무 단순하고,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텍스트나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걸 느끼기까지 내게는 꽤 긴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전시를 하면서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그림이 밝아졌다라는 말이다. 생각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그림에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불안이라는 주제로 작업한다고 하더라도 한 개인이 어떻게 한 가지 요소로만 이루어지겠는가?
다른 요소들이 함께 공존하면서 자연스럽게 스미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것이 행복하다. 글 재주나 사고의 깊이가 그 리 깊지 않기에 철학적 담론을 풀어내지는 못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꾸준히 생각할 수 있다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 말이다.

전시 제목을 오래된 아이로 지은 것은 이 불안을 인지하기 시작한 시점이 유년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기로 되돌아가 보니, 그때의 그 아이가 여전히 내 안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오래된 아이는 언제가는 내게서 떠날지도 평생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내 그림에 표현되는 고양이 인간의 형태가 아이로 묘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는 불안의 무게감에 짓눌리지는 않는다. 그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 졌다.
올해는 식물도감 작업을 위해 밖을 많이 돌아다녔는데, 식물을 관찰하면서 삶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삶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식물들의 성장과 죽음을 반복적으로 관찰하면서 그 모든 과정이 신비로운 것과 동시에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 삶과 죽음이나 때때로 느끼는 기쁨, 슬픔, 분노, 불안 죽음 등도 자연스러운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다소 늦은 깨달음이지만, 이제는 삶도 작업도 조금은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가볍지 않게 또 너무 무겁지 않게....

2013.11월 어느 겨울

 

 

 

 

성유진展 / SUNGYUJIN

2009.12.23 ~ 2010.1.17
아리랑갤러리_ARIRANG GALLERY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1483번지 센텀큐상가 1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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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부산에서 오랜만에 개인전을 하게 됐다.
2007년 작업 부터 2009년 작업까지 두루두루 참여 하지만, 전시장 공간이 넉넉치 않아 디피된 작업은 많지 않을듯 싶다.

전시 포스팅은 노트북을 들고 내려가 내일 부터 25일까지 부산에서 포스팅을 할 생각이다.

샴비...,
샴비는 이번엔 같이 가지 못한다. 방금 친구에게 샴비를 맞기고 부산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는 중이다. 시간이 된다면 친구와 친구 고양이도 샴비와 함께 부산으로 함께 하고 싶었지만, 내 시간만으로 조정할 수 있는게 아니다 보니 쉽지가 않았다.
3일을 내려가는 건데도 짐이 많다.
부산에서의 전시는 내 거주지가 아님에도 친근감이 드는, 반디의 스산한 아름다움이 맴돈다.

PS>>> **언니의 전시가 있었다. 저녁을 함께 하고 작업실로 들어가시기 전, 내 작업실에 방문을 해주셨다.
전시때면, 항상 준비를 하지 않았다 말하지만, 그정도면 2007년 많은 시간을 들이며 설치를 준비했던 내게 "설치 작업은 어디 있냐~?" 말했던 양희샘의 말이 떠오른다. 이 생각이 날때마다 그곳에서 다시 전시를 해야 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설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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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2008_0617 / 박정림展 / PARKJUNGLIM / 朴情林 / painting @ 갤러리 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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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학교동기의 전시가 있었다.
족보상으론 할배로 불리는 성덕환 선배의 부인 이기도 하니까!... 촌수로 볼땐 할매가 되는건가?

이날은 이삿짐을 나르다 와서, 함께 했던 친구는 양쪽 볼이 쏙 들어가고 더위를 먹어서 속도 편치 않아서 전시 뒤풀이를 따라 가서도 편히 앉아 있질 못했다. 그래서 사진을 담당하긴 했지만, 찍어준 사진을 들춰보다 보니, 흔들린 사진이 많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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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도착 했을즈음, 작가 박정림은 오픈식 준비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개인전 첫번째 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의 여유를, 입술 가득 품어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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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손에는 다른 작가의 도록을 들고선, 갑자기 작업에 대해 묻고 싶은게 생각나서 뭔가를 질문했다.
사진기를 들고 있던 친구는 이 장면을 세컷 찍었는데, 한번은 내가, 다른 한번은 작가 박정림이 눈을 감았다.
눈을 감지 않은 사진이 바로 위에 사진인데, 이 사진을 본 선배는 안경을 밀어 올리는 손가락이 세번째 손가락이 아니냐는 추궁을 하기도 했다. 자세히 보면, 분명 두번째 손가락 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날 전시장에는 내 눈에도 익숙한 학교 교수님들과 학교 분들이 많이 와 주셨다.
사진을 많이 찍진 못했지만, 밖에서 병일 오빠와 이야기 하던중 만난 주도양 오빠, 도양 오빠와는 난지 스튜디오2기 작가로 난지에 들어오면 신고식과 라면을 끓여 받치라는 압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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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의 전시는 2틀 뒤에 끝이 난다.
작업 하는 분들에게서 흔히 듣는 말중 수 개월을 준비하고, 일주일을 전시하고 나서 찾아오는 공허함은 전시를 수십번 해도 항상 같다고 하는데, 정림은 그 시간을 사람을 통해 풀어 갔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시의 필요성과 작업의 필요성을 조율해야 한다면, 전시보단 작업이 우선이어야 하는게 당연지사일테니, 수 개월 동안의 준비를 이 일주일 동안의 준비로만 생각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 순간이 선택의 저울 위에 놓여 있는건, 작가든 작가가 아니든 모든 사람이 같으니 말이다.


박정림 작가는 물었다.
"뭘 보고 있는거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지금 이순간, 난 샴비를 바라보고 있다.
당신은?







오랜 시간을 알아왔고, 작업의 생명력에 감동하게 되는 작가다.
사진 작업을 하는 작가로 회화를 다루는 나와는 장르적 차이가 있으면서도 작가정신에 충실한 사진회화를 다루고 있다.
전민수 작가에게는 항상 따라다니는 말이 있다.
"부지런 하다." , "즐거운 사람"
작가를 7년 넘게 봐오면서 인상을 쓰거나 고민 스러운 얼굴은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작업실에 쌓인 작품의 숫자 만큼 고민되는 일들도 많을텐데, 전민수 작가는 언제나 유쾌하다.
또, 여성 스럽다.





 

Flowers

전민수 사진展

2007_1219 ▶ 2007_1225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민수_Flowers_Lambda print_101.6×76.2cm_2007



초대일시_2007_1219_수요일_06: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02_734_1333
www.ganaartgallery.com/




남자다움은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교육된 결과물이다. 어쩌면 연약하고 나약한 남성들은 그것을 감추기 위해 힘과 권력, 권위를 드러내며, 겉으로 드러난 모습의 이면에서는 더욱 더 나약해지는 것이 남성의 모습일 것이다.
  이러한 연약함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면 남성은 여성보다도 더 부드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존재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부드러움과 아름다운의 상징인 꽃과 남성의 모습을 꼴라쥬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민수_Flowers_Lambda print_101.6×76.2cm_2007


 꽃이 만개하여 그 절정에 이르렀을 때, 이제 꽃은 지는 일만 남는다. 그리고 가장 화려한 지점에서 꽃이 진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런 불안감에 인간은 아름다움을 오래간직할 요량으로 절정에 다다른 꽃에게 죽음을 선사하고, 꽃에게 영원의 모습을 부여한다. 바로 꽃을 그대로 말려 버리는 작업이 그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그 아름다움이 사라질까하는 죽음의 두려움 보다는 오히려 죽음으로 인해 내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되는 아름다운 나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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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수_Flowers_Lambda print_101.6×76.2cm_2007


  이 작업은 나의 슬픈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모습에서 느껴왔던 기성세대의 권위적인 모습과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서 끝까지 강한 모습을 유지하려는 자세. 그 자세는 당신(남자)을 외롭게 만들었다. 당신의 그 모습 속에서 닮지 말아야하면서도 닮아 있는 나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민수_Flowers_Lambda print_101.6×76.2cm_2007


 우리의 남성은 외롭다. 쉽게 눈물을 보여서는 않되고,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하고, 말이 많아도 보기 싫고, 힘과 자존심이 있어야 하고, 언제나 강한 모습을 잃지 않아야 하도록 이 사회는 교육하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 남자들은 싸움을 일으키고 경쟁하고 또 이기고 지고, 그러면서 자신의 슬픔을 감출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엄마 품에서 혹은, 그들 여자의 무릎에 머리를 묻고 편하게 울고 싶은 욕구가 가득할 것이다.

 결국 이 작업은 남성을 여성처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성의 섹시함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강함과 부드러움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남성도 여성보다 더 아름답고 부드러운 존재임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래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세상을 환하게 하는 아름다운 존재임을 드러내고 싶었다.
 봉우리진 꽃도 아름답고, 피기 시작한 꽃도 아름답고, 만개한 꽃도 아름답고, 시든 꽃 또한 아름답다. 서로 나타내는 표현과 모습이 다를 뿐, 모두 아름다운 숨을 쉬고 있는 그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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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수_Flowers_Lambda print_101.6×76.2cm_2007


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 곁에 힘이 되어 준 모든 이들과 같이 있어서 즐거운 이 세상. 먼저 떠나신 부모님과 사랑하는 나의 아내, 그리고 나의 오랜 스승이신 최광호 선생님을 비롯한 모두에게 감사한다.  -- 전민수 작가노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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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아트스페이스 2F

전시는 선거날인 19일 부터 25일 까지 인사동 가나아트 스페이스에서 열린다. 가나아트 스페이스를 가끔 평창동에 가나아트센터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가나아트 스페이스는 3호선 안국역에서 인사동으로 들어서면 왼쪽 빵집을 지나 학고재 갤러리 옆에 있는 전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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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바이러스 (Anxiety virus)

성유진 회화展

2007_0817 ▶ 2007_0831 / 월요일 휴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유진_anguish_천에 콘테_130×97cm_2007


초대일시_2007_0817_토요일_06:00pm
부대행사 / opening and workshop_2007_0817_06:30pm

관람시간_11:00 - 6:00pm



대안공간 반디
부산 수영구 광안2동 169-44번지
Tel. 051_756_3313
www.spacebandee.com





고양이­에어리언의 탄생 ● 인간과 동물을 결합한 이미지, 반인반수는 신화와 전설을 통해 등장했던 숱한 이미지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이었다. 인간의 욕망을 차마 인간적인 차원에서 표현할 수 없어, 날 것 그대로의 동물적이고 야생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인간의 욕망을 대입시키려는 문명의 소산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인어, 늑대­인간, 소­인간, 새­인간, 말­인간 따위는, 모두 인간화할 수 없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존재들, 즉 동물과의 결합을 통해서 인간의 욕망을 우회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다른 존재와의 결합을 통해 인간을 넘어서고 싶은 욕망은 사실, 현실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나약하며 매우 불안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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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진_my room_천에 콘테_130×97cm_2007


이 런 관점에서 보면 성유진이 만들어낸 캐릭터, 고양이­인간 역시 인간존재의 불안을 보여준다. 고양이­인간은 온 몸이 털로 감싸져 있지만 인간의 신체, 얼굴, 손, 발 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간적인 신체들이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과장된 눈과 기이하게 변형된 몸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나는데, 의식이 통제하지 못한 잉여들, 즉 고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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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진_blooming_천에 콘테_122×122cm_2007


그 런데 작가는 불안을 굉장히 안정적인 구도로 잡아낸다. 사실, 불안을 안정적으로 형상화한다는 것은 아이러니 한데, 대부분의 작품에서 캐릭터는 화면의 중심을 점하고 있다. 때문에 정적인 공간과 대조적으로 변형된 신체는 불안을 극대화 한다. 변형된 신체를 통해 불안을 표현하는 것, 그 중에서 불안을 내면화하는 대표적인 장치가 바로 ‘눈’이다. 〈자화상〉연작에서 알 수 있듯이 ‘눈’은 아무 것도 응시하지 못한 눈, 동공을 지워버린 눈, 여러 방향을 동시에 응시하는 눈, 때로는 눈을 감아버리기도 한다. 또한 〈눈물〉이란 작품에서 눈물은 ‘눈’ 외부로 떨어지지 못하고 내부에서만 흘러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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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진_a cripple_천에 콘테_97×130cm_2007


한 편으로 ‘눈’과 달리 성유진에게 몸은 통제가 불가능한, 무의식이 스멀거리는 장이다. 〈절름발이〉, 〈불안 바이러스〉, 〈거꾸로 추락하다〉, 〈생산적 구토〉, 〈눈물〉에서 텅 빈 외부공간은 과잉된 무의식을 압박하지만, 꺾어진 관절과 흐물거리는 살은 신체의 유기적인 흐름을 방해하며 불안을 온 몸으로 드러낸다. 더군다나 사지가 찢겨 나간 〈자기소외〉라는 작품에서 쏟아 나오는 것은 피가 아니라는 것, 억압받던 무의식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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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진_a faint hope_천에 콘테_80×120cm_2007


그 렇다면 고양이­인간은 불안을 극복하고 인간을 넘어설 수 있을까. 사실, 인간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은 자연히 통증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이야기를 추출해 낼 수 있는 작품 〈희미한 희망〉, 〈나의 방〉, 〈고통〉에서 잘 나타난다. 〈나의 방〉에서 뜯겨져 나간 벽과 바닥의 중앙에 놓인 서랍 위에 앉아 있는 고양이-인간의 시선은 외부로 나가는 계단을 향해 있다. 또한 〈희미한 희망〉은 온 몸에 불안을 안고 있는 고양이-인간과 왼쪽 창문틀에 앉아 있는 고양이-새가 붉은 실은 물고 있는 장면을 연출한다. 갇힌 방 안의 고양이-인간, 인간을 넘어서려 하지만 좌절되고야 마는 현실의 불안들. ● 이러한 불안이 정점에 달하는 작품은 〈고통〉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고양이-인간은 스스로 수술용 침대가 되어서 몸속으로 액체를 투여받는다. 그런데 눈여겨 볼 것은 이 액체가 외부에서 몸으로 들어오는 것인지 아니면 몸 안에서 액체가 생성되어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인지가 모호하다. 어쩌면 이 액체는 의식이 감당하지 못하는 이물질들, 오이디푸스기를 겪는 과정에서 철저히 탄압받던 몸의 잉여물들이 귀환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사회적인 인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주저하는 것, 그래서 고양이­인간은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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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진_self alienation_천에 콘테_46×85cm_2007


세 상이 요구하는 인간, 보편적 질서를 몸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고양이­인간은 인간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아닌 길을 선택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매끈한 주체를 거부하기 때문에 온몸은 비틀어지고 발진으로 시달리게 된다. 고양이­인간은 작가가 만들어 낸 독특한 캐릭터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결코 작가의 것이 아니다. 어쩌면 고양이­인간은 무의식을 철저히 통제하며, 사회화된 인간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세계에서, 불안한 주체들의 통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 신양희



sung yu jin
Anxiety virus

Yu Jin Sung Solo Exhibition

2007_0817 ▶ 2007_0831 / 월요일 휴관


사용자 삽입 이미지

Yu Jin Sung ∥ anguish ∥ Conte on cloth ∥ 130×97cm ∥ 2007



 

성유진 (Yu Jin Sung) 개인전 " 불안 바이러스(Anxiety virus)"

초대일시 2007 0817 토요일 6:00pm

관람시간_11:00 - 6:00pm


대안공간 반디
부산 수영구 광안2동 169-44번지
Tel. 051_756_3313
www.spacebandee.com






그림을 그려 나가면서, 나의 불안과 우울을 생각 하면서 그것을 밖으로 끌어 내 화판에
담아내는 과정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다.
불안과 우울을 이야기하는, 내 숨겨졌던 자아가 밖으로 보여지는 과정이 반복 되면서,
자아 성찰 과정으로써 그림은 어떤 부분에선 마음의 치료약이 될 수 있다는 생각들,
이 생각은 그저 상상이었을 뿐이고 느낌으로 전달 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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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 Jin Sung ∥ my room ∥ Conte on cloth ∥ 130×97cm ∥ 2007



이 생각이 잘못 된 것이다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에서 난 내 안의
모습을 바라 보고 파고 들수 없는 이유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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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 Jin Sung ∥ blooming ∥ Conte on cloth ∥ 122×122cm ∥ 2007



안으로 파고드는 난, 스스로 내 안에 구속되어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안전장치도 없이 내 안으로만 파고 드는 것은 적극적인 개방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감추려 했을 뿐이다.
내 자아는 의식되는 나와는 다른, 또 다른 존재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듯 했다.
어슬프게 그것을 들여다 보기만 해서는 내 의식이 자아에게 먹혀 버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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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 Jin Sung ∥ a cripple ∥ Conte on cloth ∥ 97.2×130.3cm ∥ 2007


예쁘고, 아름다운 것은 사람들과 쉽게 이야기되고 함께 바라보고 하며 일상에서도 숨겨지고, 외면되기
보다는 그것을 알지 못하면 외면되기도 하는게 사회에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이 소외되는 것을 내 이야기의 범위를 벗어나 사회적이거나 경제, 현실등을 설명하며 이야기 할 수
는 없다. 그것에 내가 속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각적으로 난 그것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내가 속한 범위에서의 느낌 뿐이다.
내 생활 속에서 나는 사람들을 만나며 불안해 하고, 경제적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해 하고, 이런것들을
생각해야 하는 것을 불안해 한다.
혼자 있어도 불안하고, 함께 있어도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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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 Jin Sung ∥ a faint hope ∥ Conte on cloth ∥ 80×120cm ∥ 2007

불안은 다양한 개인이 표현되는 평범함일 뿐이다.
개인을 정의하려 하는 것이 사회, 집단에 지독한 버릇인 것처럼, 온라인상의 블로그와 블로그를
사용하는 사람들(블로거)을 정의 하려는 것이, 사회적 틀 안에서 개인인 블로거를 일정한 틀로 구속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가 개인을, 사회적 개인이 개인을 구속하는 것이 일상화 되었고, 개인대 개인으로 소통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불안 바이러스 (Anxiety virus) 작업은 블로그의 공간에 그림들 하나 하나가 포스트를 대표 하는 것으로
그림과 개인, 개인과 개인의 소통을 위한 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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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 Jin Sung ∥ self alienation ∥ Conte on cloth ∥ 46×85cm ∥ 2007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Artist의 완성된 재현이라기 보다는 소재 로써의 자아발견, 자아 완성의 과정
이라고, 할수 있다. Conte의 원초적 소재로 다가서는 내안의 자아는 소통과 단절이라는 상충할 수
없는 어긋남을 지니고, 공간과 시간을 넘어 소통을 위한 고리를 남기고 있다.
불안 바이러스 작업으로 블로그에 기록된 그림들은 오프라인 에서의 제한된 공간과 단위적 시간을
넘어 블로그에서의 소통, 트랙백을 통한 개인 대 개인의 공개된 소통을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
불안 바이러스 작업은 그림이 완성되어 전시장에 공개되는 시점이 아닌, 오프라인과
온라인 공간을 통해 그림 과 개인의 소통이 쌓여가는 것으로 작업이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 성유진

다양한 이야기를 설명적으로 하는건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또한,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닐까? 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너무 한가지로 몰아져 있는건 아니냐? 는 말을 하기도 한다.

재미 있다는 말들,
무섭다는 말들
슬퍼서 울컥 한다는 말들...

콘테를 깍는 짧은 순간 발생했던 잠재된 기억, 손에 잡힌 콘테의 떨림으로 만들어지는 소리
이것이 내 그림 이라면,
사람들이 원하는 그림은 시신경을 타고 흐르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대안곤간 반디 엽서
Designed by 안혜선





http://www.sungyujin.com

홍대클럽 바다비 살리기 초청 전
2006.11.22 ~ 2006.11.30
Pm 4~10 (Pm 4~7 무료입장, Pm 7~10 유료입장)
이번 전시는 크럽 바다비의 "살리고 살리고" 의 초청으로 이뤄지며,
클럽 바다비의 프로젝트 지원을 위한 전시입니다.
오후 7시~10 까지는 공연이 있는 관계로 유료 입장을 하게 됩니다.

부산에서 있었던 전시를 바로 이어서 할 수 있는 성격이라, 신작 7점과
기존작 4점이 전시 됩니다.

 성유진 회화전   an Uneasy Outgoing

불안한 외출 


2006_1122 ▶ 2006_1130
성유진 _ Sung yu jin

awakeningconte on cloth 2006 122×100

"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을 긍정하길 반복하다 보면 새로운 것들이

표현되는데 그 과정은 힘겹지만, 그 과정 이후에 얻는 힘이 너무나 크다.
나는 이 과정을 작업을 통해서 반복하고 내 그림과 대화를 하게 된다."

SALON 바다비

http://cafe.daum.net/badabie

당신이 그러면 그럴수록 │ conte on cloth 2006 80×122

an uneasy going out
성유진 회화展
2006_1111 ▶ 2006_1120

소울아트스페이스

『an uneasy going out (불안한 외출) 작품들

성유진 _ Sung yu jin


EGO'S House(63×84) _ Sold Out_conte on cloth_성유진

EGO'S House(63×84) Sold Out

EGO'S House(59×84) _ Sold Out_conte on cloth_성유진

EGO'S House(59×84) Sold Out

EGO'S House(60×84) _ Sold Out_conte on cloth_성유진

EGO'S House(60×84) Sold Out

an uneasy going out (불안한 외출)
내게 보이고 내가 느끼는 것은 아직 내 자아와 내 생각 뿐이다.
나는 내 뒤에 숨어서 밖을 내다 보려고 한다.
고독한 자아는 의식적으로 숨으려 하고, 불안정한 내 고독은 일상으로의 외출을 시도한다.
개인으로써 내 자아는 또다른 개인과 소통 할 수 있을 것이다.?
E(60×80)_conte on cloth_성유진

E(60×80)

R(60×80)_conte on cloth_성유진

R(60×80)


O(62×80)_conte on cloth_성유진

O(62×80)

S(62×80)_conte on cloth_성유진

S(62×80)


poisoned by solitude(80×122)_conte on cloth_성유진

poisoned by solitude(80×122) Sold Out

당신이 그러면 그럴수록(80×122)_conte on cloth_성유진

당신이 그러면 그럴수록(80×122)


awakening(122×100)_conte on cloth_성유진

awakening(122×100)

awakening(122×100)
  1. sm
Un uneasy going out
검은 털들이 캔버스 천을 뚫고 자라나온 것 같다. 검은 털은 반드르한
윤기가 올라와 탐나 보이기도 하고, 북슬북슬한 것이 귀엽기도 하고,
언뜻 따뜻해 보이는 밑살들이 보이는 것이 손을 넣어보고 싶게 만든다.
첫 인상이 밝지많은 않은데 그 특유희 묘한 인상으로 시선을 멈추게 하고
아늑한 어두움 속에 우리를 앉히고야 마는 묘한 매력이 있다.

한 작업을 시작하면 끝을 낼 때까지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는 작가의
치열한 작업현상이 엿보이는 듯... 어깨가 아리도록 콘테(conte)를 북북 그어
데는 소리가 들여온다. 그렇게 시커먼 conte 가루가 날리는 방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이 불안한 외출을 시도 하였다. 얌전하게 바니쉬가
발리워져 깨끗한 전시장 벽면에 어색한 듯 붙어 있는 아이들은 커다란 눈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리다가 관객과 마주치고야 만다.

피곤한 눈동자는 충혈되어 있는데 감으려고 하지는 않고 가는 팔과 다리도 축 쳐져 있다.
지쳤지만 잠들 수는 없는 간절한 부르짖음 같은 것이 느껴진다.
'작업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난 사라질지도 모른다'
작가는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조용히 다가가 검은 털들을 쓰다듬어주며 눈을 마추고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작은 손을 잡아주며 그 옆에 앉아 북슬북슬 따뜻한 온기를 느껴보자.   
-장정연-
Technorati Profile
Work post

갤러리에 방문 해 주시면 위에 녀석이 나와 있는 엽서가 있습니다. 
충무로 영상센터 오재미동에서도 무료로 배포하고 있습니다.^^     
옆에 메뉴위에 메일이나 덧글로 주소와 이름 알려 주시면 우편으로
엽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 오늘~ 7월 31 : 전시 준비 기간

● 8월 4일 (예정) : 전시 오픈(3주 예정)
                          -장소 : 홍대 HUT 갤러리

블러그에 뭘좀 올릴려 해도 난 말은 잘 못하고, 그림을 올릴 여력이 없다.
이것 저것 준비해야 하고, 전시용 그림도 그려야 하고,...
대형그림을 그리다 보니, 화판을 따로 주문해야 해서 에어타카와 목제를 구입 집에서 만들기로 했다.
어젯 밤 화판 두개를 만들고, 나머지 목제는 복도에 잔득 쌓여 있다.
흐흐~ 주인집 아주머니께선 그림 그리는 동안은 옥상에 빨래를 걸지 않으시겠다고 하시고, 아저씨는
1층에서 줄에 묶어서 3층으로 끌어 올리는 걸 도와 주시고,... (다리도 불편하신데...@.@)
작업실이 없다는 건 불편한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림을 못 그리게 하는 건 아니다.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큰 그림은 생각을 못했었는데, 지난 전시를 하면서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이
변한 것 같다.
그릴 려고만 하면 그릴 수 있다는,...

7월엔 그림이 아닌 작업 사진만 올릴 생각이다.

HUT



젊은 작가를 위한 문화운동 중심지


* 작가들의 구심점 역할

* 신진작가 발굴

* 작가 지원

* 미술의 대중성 지향



작가로서의 첫발을 디디는 곳, HUT

진정한 미술 대중화와 젊은 작가들에게 지속적인 후원 가능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곳.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곳. 누구나 주인일 수 있는 곳.

편한 내 집 같은 안식처로 HUT이 기억되길 바랍니다.


*club.cyworld.com/hut368 으로 오시면 HUT의 모습과 최근 소식 등을 접할 수 있습니다.

현재 포트폴리오 접수 중입니다. 가입하시고 PR Yourself 란에 자기소개도 하세요.

HUT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368-13  TEL, FAX : 02-6401-3613

=======================  HUT 갤러리 에서 발취 =======================



개인전 준비를 위해 HUT 갤러리를 방문했다.

카페와 클럽으로 물들어가는 홍대의 타락과 방종의 거리에 살포시 도전장을 던지기라도 하듯,  

주차장 거리에서 HUT 갤러리로 들어가는 입구엔 다른건물은 눈에 들어오지도 못할 강한 초록으로

저~기.. 저기,  자리잡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압구정에 "집 갤러리" 와 비슷한 내부 공간을 지늬고 있어서, 사라진 집 갤러리가

홍대로 이사를 한 느낌 이였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어떤 느낌을 작가와 작품에서 받아 들일지...

다가오는 사람들과 작가들에 영혼이 대화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성장하길 기원한다.

그러려면 내 영혼도 깨어 있어야 하는데,
--- 홍대 HUT 갤러리(Gallery)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68-13 초록색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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