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가 웹상에서 편집되고 보여지는 공간이다 보니, 확장된 일기장 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일기장은 언젠가 불확실한 누군가에게 보여질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쓰여진다는 말이
있다. 어린 시절 일기장을 쓸때, "아무도 이걸 볼 순 없어~!" 하는 생각만을 지늬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래에 내가 이 일기장을 보게 된다면, 까마득히 잊고 있던, (오늘에 기억들을
기억해 내려 해도 도무지 기억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그땐 이미 난, 타인으로써
내 일기장을 보는 것과 마찮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블로그에 글을 쓸때 어휘 선택을 어떻게 , 인칭은? 등등 생각하곤 한다.

내가 블로그를 이용하는 범위는 사생활에 일부분에 대한 공간이고, 이 공간은 절대적으로
나만에 공간이 아닌 것이 된다.
개인을 정의하려 하는 것이 사회, 집단에 지독한 버릇인 것처럼. 블로그;블로거를 정의 하려는
것이 또 사회적 논리로 개인인 블로거를 일정한 틀로 구속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림을 볼때 제목을 보고 나서야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것처럼, 알수없는 것... 대체로
많은 것들에 정의를 원한다.
개인을 정의 내릴 수 있는 것, 내 자신을 뭐라 말하는 것을 내 자신도 믿어야 한다면, 그 말은 세상과
나를 창조해내신 분의 말이어야만 한다. 정의내린다는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없기 때문이다.
블로거;개인으로 이 블로그를 사용하는 나는, 이 쌍방향적 소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을
전시를 기획하고, 전시장에서 관객과 그림으로, 작가로 소통에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과 같다.
내게 있어선 말이다...!

그러면서도 블로그는 전시가 이뤄지는 전시장 보다는 가볍고, 안정적이고, 홀가분 하다.
누가 와도 뭐라 하지 않고, 숨어서 올 수도 있고,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가벼운 덧글을 남겨도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나이드신 작가님들 부터 젊은 작가분들 모두 작품활동에 대한 소통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 하고 있다. 미술은 기본적으로 소통성에 대해 진지해야 한다.
그걸 충족할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일이 전시장을 통한 관객과에 대화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작가들이 이 대화에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그렇듯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에 대해서 흔히, 또는 작가에 대해서, "이 작가는 이런 그림이다." 하는 정의를 내리게 된다.
어떻게 보면 작가 스스로도 자신에 그림에 대한 정의를 처음 부터 설정해 놓고 시작을 하는 경향이
있는 지도 모른다.

내가 많은 부분 고민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지금에 그림을 어떤 식으로 정의 내릴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고민들이다.

작년 전시를 통하면서, 난 고양이 그림을 그리는 작가 라는 호칭이 붙었다.
엄밀히 말하면 고양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보는 사람들에겐 기준으로 삼을 정의가 필요하다.
기준이 있어야 옆으로든 앞뒤로든 나열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확실히 내겐 아직 기준을 두고 싶지 않다. 내 스스로는...
블로그 메인에 적혀 있는 것 처럼 난,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이런 상태에선 내 스스로 정의 내릴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전시장은 준비되고, 자로 그은듯 기획된 공간 이라면
이곳 블로그에선 모든 그림은 아닐 지라도, 일상에서의 흔한 드로잉들까지도 공개하는 장소다.
모든 사람들이 노트에 끄적끄적 해봤음 직한 그런 그림들까지도 ...
블로그를 통하는 쌍방성에 진화하는 블로그인들을 만나며 나 또한 진화할 수 있는 소통을 만들어갈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일러스트와 회화에 경계에 대해선 회화작가들은 주의해야 한다... 라고 한다.

- 흔히 말하기는 일러스트는 목적성이 있다고 한다. 풀어 말하면 상업적 미술 이라는 것이다.
그에 반해 회화는 개인적이다. 작가의 표현기법이나 내면드로잉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업적이기 어렵다.
일러스트는 단순히 상업적이기만 하면 그 의미가 통하는 것은 아니다. 상업 미술안에 일러스트가
있다면 순수미술 속에서도 역시 일러스트적 기법을 사용하는 회화가 있다.
작가들이 원하는 대중과의 소통에 대한 필요는 순수미술속의 일러스트 속에선 처음 부터
의미없는 것이다.

재미 있기 때문이다.

미술속에 만화적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 현대미술 이듯이, 일러스트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대중과의 쌍방향적 소통성과 스토리텔링이다.
미술은 회화나 일러스트, 만화 같은 틀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그 틀에 대부분은 관찰자에 편의로 만들어 지는 것이지만
작가에 의도를 해하는 경우도 있다.

2006년을 몇일 남겨두지 않은 지금, 마침 휴일이기도 (크리스마스는 감정적 느낌 보다는 휴일이라는 딱딱한 생각이 앞선다.) 한 오늘 지난 시간을 정리해 둘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 바라 볼 수 있는 생각과 지혜를 지늬지 못한 나 이기에 조금 짧은 내년을 생각하고, 전시와 그림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봐야한다.

올해 전시를 하며 사람들을 만나며 느낄 수 있었던건, 그림은 단순히 그림만 그려서는 그걸 바라봐 주는 것 만은 아니라는 것이였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부분은 알 수 없는 것은 피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알수 없는 것은 어차피 내 개인적인 부분이다보니,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들을 모두 읽거나 굳이 찾아 보는 것은
귀찮아 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렇다.
그리고, 사람들은 편의상 구분되고 설명된 것을 원한다.
아마도 알 수 없는 개인적인 것을 피하려는 경향 때문인 듯 하다.
첫 전시 부터 일부 사람들은 나를 고양이 작가라고 부르는 것, (재미 있었다. ^^) 갤러리에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샴비를 보여 줬기 때문이 아니라, 고양이로 형상화된 내 EGO 를 고양이로 단정지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건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 스러운 것이다.
나 또한 여러가지 것들을 내 편의대로 구분하고 단정 짓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분된다는 것은 개인적인 경향이 크다.
또 다른 제 3자,4자 관찰자들 , 물론 사람들이겠지만 , 이
이런 구분된 틀을 접하게 되면, 프로그램에 생각지 못한 버그가 생기는 것 같이
기본적인 소통성을 가로막는 벽이 되기도 한다.
회화나 일러스트, 만화 이 모두는 그리는 것이다.
그리는 것이라는 기본적인 생각만으로 접하는 것과 세가지 구분된 생각으로 접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성유진의 진행중인 공개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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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와 회화에 경계에 대해선 회화작가들은 주의해야 한다... 라고 한다.

그림은 완성도에 대한 문제가 있다.
그림은 편집증 같은 압박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완성을 해야 겠다는 편집증이 느껴진다고 한다.
...

그래서 이 그림은 완성을 하지 못했다.

그때는 완성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느낌 만으로 그 심리를 따라가는 형식없는 표현을 만들어 볼 수 있었을텐데, 손을 딱~ 놓았다.

낙서, ... 이 블러그에는 노트건, 크래프트지건, 전지건 내가 쓰는 내 표현을 담아 내고 있다.
낙서... 그래서 모두 낙서라고 부른다.
복잡하게 생각 하지 말아야지...
한평짜리 꽉 막힌 공간에 들어가서 10일 동안 갇혀서 하루종일 그림 그리면서 놀고 싶다. 먹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그러면 11일 후엔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텐데... (그런데 요즘도 잘 자고 있거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변비도 해결 될지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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