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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Conte on cloth  ,  년도: 2007  ,  사이즈: 130×97 cm
제목: anguish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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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Conte on cloth  ,  년도: 2007  ,  사이즈: 130×97 cm
제목: my room (나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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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Conte on cloth  ,  년도: 2007  ,  사이즈: 97.2×130.3 cm
제목: a cripple(절름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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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Conte on cloth  ,  년도: 2007  ,  사이즈: 122×122 cm
제목: blooming(활짝 꽃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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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Conte on cloth  ,  년도: 2007  ,  사이즈: 80×120 cm
제목: a faint hope(희미한 희망)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가장 어려운 고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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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Conte on cloth  ,  년도: 2007  ,  사이즈: 46×85 cm (30호)
제목: Self alienation(자기소외)


그림을 그려 나가면서, 나의 불안과 우울을 생각 하면서 그것을 밖으로 끌어 내 화판에 담아내는 과정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다.
불안과 우울을 이야기하는, 내 숨겨졌던 자아가 밖으로 보여지는 과정이 반복 되면서, 자아 성찰 과정으로써 그림은 어떤 부분에선 마음의 치료약이 될 수 있다는 생각들, 이 생각은 그저 상상이었을 뿐이고 느낌으로 전달 되었을 뿐이다.
이 생각이 잘못 된 것이다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에서 난 내 안의 모습을 바라 보고 파고 들수 없는 이유를 발견했다.

안으로 파고드는 난, 스스로 내 안에 구속되어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안전장치도 없이 내 안으로만 파고 드는 것은 적극적인 개방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감추려 했을 뿐이다.
내 자아는 의식되는 나와는 다른, 또 다른 존재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듯 했다.
어슬프게 그것을 들여다 보기만 해서는 내 의식이 자아에게 먹혀 버릴 것 같았다.


이 그림이 블로그에 걸리는 순간 부터 이 그림은 포스트를 대표하며, 이 글의 트랙백이 곧 이 그림의 것 이다. 이 블로그 안에서가 아니더라도, 그림의 트랙백 주소를 통해서 다른 누군가는 내게 말을 걸수 있다.
그림에게 독립된 공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 공간에서 나는 이 이야기를 남기는 현재를 그림에게 함께 담아 놓는다.
지금 현재의 내 의식은 과거로 묻혀질 이 순간을 그림과 함께 트랙백을 남겨 두어서,
미래에 누군가 현재의 의식을 불러 깨워줄 안전 장치를 해두는 것이다.
안전장치는 과거로만 묻혀질 이 순간의 나를 흔들고 깨워 줄 것이다. ( 그렇게 믿고 싶다. )
"성유진~! 일어나~~!! 너 아직 거기 머물러 있는 거야~?"
하고 말이다.
막연 한 이야기지만, 난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순간 이후 ...


아래는 음성을 녹음한 것이다. 불안 바이러스 작업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2007년 8월 17~31일 대안공간 반디 (부산) 에서 불안 바이러스 작업을 기획한 전시가 열립니다.
8월 17일 00시 까지는 불안 바이러스 작업으로 작성되는 모든 글들이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람할 수 있습니다.
비밀번호를 받으신 분들께서도 8월 17일 00시 까지는 그림을 인용하시더라도, 비공개 처리 바랍니다.
위에서 말한 시간 이후에는 글을 그림을 퍼가셔도 됩니다.

이 글은 불안 바이러스 작업에 답변을 보내 주셨던 블로거 분들께 트랙백과 덧글로 보내드렸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이야기라서 대략 40여 분께 보내드렸는데요~
앞으로 포스팅될 그림과 이야기는 선택적으로 한분께, 또는 두분께 비밀번호를 보내드릴 생각 입니다.
약 40여분이 이 글 이외에 한개의 비밀번호를 받으시게 될 겁니다.
이 글은 설명이 필요할듯 싶어서 모든 분들께 보내 드렸습니다.

처음 공개하는 그림을 놓고, 작가 입장에서 사람들에게 그림 이야기를 하는 경우 당당하려고 애써 노력하는 경우조차 자신의 속내를 모두 까놓은 것에 불안해 지기도 합니다.
이 글을 시작으로 글을 보시는 분들은 미술적 비평을 하셔도 되고, 생각 나시는 일상 이야기를 하셔도 됩니다. 글을 트랙백으로 달아 주시거나 덧글로 달아 주셔도 됩니다.

<추가>
이글을 보실 수 있는 분들중 불안 바이러스 작업중인 다른 글들을 8월 17일 이전에 보고 싶은 분이 계시면, 블로그 메인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불안 바이러스 작업 리스트 글에 덧글을 남겨 주세요. 열쇠를 드리겠습니다.
다만, 열쇠를 받게 되시면 트랙백으로 글을 보내 주셔야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불안 바이러스 작업 리스트에 올려진 글들은 한분~두분(대부분 한분)께만 제 임의적으로, 트랙백이나 덧글로 열쇠를 남겨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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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바이러스 (Anxiety virus)

성유진 회화展

2007_0817 ▶ 2007_0831 / 월요일 휴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유진_anguish_천에 콘테_130×97cm_2007


초대일시_2007_0817_토요일_06:00pm
부대행사 / opening and workshop_2007_0817_06:30pm

관람시간_11:00 - 6:00pm



대안공간 반디
부산 수영구 광안2동 169-44번지
Tel. 051_756_3313
www.spacebandee.com





고양이­에어리언의 탄생 ● 인간과 동물을 결합한 이미지, 반인반수는 신화와 전설을 통해 등장했던 숱한 이미지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이었다. 인간의 욕망을 차마 인간적인 차원에서 표현할 수 없어, 날 것 그대로의 동물적이고 야생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인간의 욕망을 대입시키려는 문명의 소산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인어, 늑대­인간, 소­인간, 새­인간, 말­인간 따위는, 모두 인간화할 수 없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존재들, 즉 동물과의 결합을 통해서 인간의 욕망을 우회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다른 존재와의 결합을 통해 인간을 넘어서고 싶은 욕망은 사실, 현실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나약하며 매우 불안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유진_my room_천에 콘테_130×97cm_2007


이 런 관점에서 보면 성유진이 만들어낸 캐릭터, 고양이­인간 역시 인간존재의 불안을 보여준다. 고양이­인간은 온 몸이 털로 감싸져 있지만 인간의 신체, 얼굴, 손, 발 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간적인 신체들이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과장된 눈과 기이하게 변형된 몸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나는데, 의식이 통제하지 못한 잉여들, 즉 고통을 보여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유진_blooming_천에 콘테_122×122cm_2007


그 런데 작가는 불안을 굉장히 안정적인 구도로 잡아낸다. 사실, 불안을 안정적으로 형상화한다는 것은 아이러니 한데, 대부분의 작품에서 캐릭터는 화면의 중심을 점하고 있다. 때문에 정적인 공간과 대조적으로 변형된 신체는 불안을 극대화 한다. 변형된 신체를 통해 불안을 표현하는 것, 그 중에서 불안을 내면화하는 대표적인 장치가 바로 ‘눈’이다. 〈자화상〉연작에서 알 수 있듯이 ‘눈’은 아무 것도 응시하지 못한 눈, 동공을 지워버린 눈, 여러 방향을 동시에 응시하는 눈, 때로는 눈을 감아버리기도 한다. 또한 〈눈물〉이란 작품에서 눈물은 ‘눈’ 외부로 떨어지지 못하고 내부에서만 흘러내리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유진_a cripple_천에 콘테_97×130cm_2007


한 편으로 ‘눈’과 달리 성유진에게 몸은 통제가 불가능한, 무의식이 스멀거리는 장이다. 〈절름발이〉, 〈불안 바이러스〉, 〈거꾸로 추락하다〉, 〈생산적 구토〉, 〈눈물〉에서 텅 빈 외부공간은 과잉된 무의식을 압박하지만, 꺾어진 관절과 흐물거리는 살은 신체의 유기적인 흐름을 방해하며 불안을 온 몸으로 드러낸다. 더군다나 사지가 찢겨 나간 〈자기소외〉라는 작품에서 쏟아 나오는 것은 피가 아니라는 것, 억압받던 무의식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을 보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유진_a faint hope_천에 콘테_80×120cm_2007


그 렇다면 고양이­인간은 불안을 극복하고 인간을 넘어설 수 있을까. 사실, 인간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은 자연히 통증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이야기를 추출해 낼 수 있는 작품 〈희미한 희망〉, 〈나의 방〉, 〈고통〉에서 잘 나타난다. 〈나의 방〉에서 뜯겨져 나간 벽과 바닥의 중앙에 놓인 서랍 위에 앉아 있는 고양이-인간의 시선은 외부로 나가는 계단을 향해 있다. 또한 〈희미한 희망〉은 온 몸에 불안을 안고 있는 고양이-인간과 왼쪽 창문틀에 앉아 있는 고양이-새가 붉은 실은 물고 있는 장면을 연출한다. 갇힌 방 안의 고양이-인간, 인간을 넘어서려 하지만 좌절되고야 마는 현실의 불안들. ● 이러한 불안이 정점에 달하는 작품은 〈고통〉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고양이-인간은 스스로 수술용 침대가 되어서 몸속으로 액체를 투여받는다. 그런데 눈여겨 볼 것은 이 액체가 외부에서 몸으로 들어오는 것인지 아니면 몸 안에서 액체가 생성되어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인지가 모호하다. 어쩌면 이 액체는 의식이 감당하지 못하는 이물질들, 오이디푸스기를 겪는 과정에서 철저히 탄압받던 몸의 잉여물들이 귀환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사회적인 인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주저하는 것, 그래서 고양이­인간은 고통스럽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유진_self alienation_천에 콘테_46×85cm_2007


세 상이 요구하는 인간, 보편적 질서를 몸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고양이­인간은 인간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아닌 길을 선택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매끈한 주체를 거부하기 때문에 온몸은 비틀어지고 발진으로 시달리게 된다. 고양이­인간은 작가가 만들어 낸 독특한 캐릭터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결코 작가의 것이 아니다. 어쩌면 고양이­인간은 무의식을 철저히 통제하며, 사회화된 인간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세계에서, 불안한 주체들의 통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 신양희



sung yu jin
Anxiety virus

Yu Jin Sung Solo Exhibition

2007_0817 ▶ 2007_0831 / 월요일 휴관


사용자 삽입 이미지

Yu Jin Sung ∥ anguish ∥ Conte on cloth ∥ 130×97cm ∥ 2007



 

성유진 (Yu Jin Sung) 개인전 " 불안 바이러스(Anxiety virus)"

초대일시 2007 0817 토요일 6:00pm

관람시간_11:00 - 6:00pm


대안공간 반디
부산 수영구 광안2동 169-44번지
Tel. 051_756_3313
www.spacebandee.com






그림을 그려 나가면서, 나의 불안과 우울을 생각 하면서 그것을 밖으로 끌어 내 화판에
담아내는 과정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다.
불안과 우울을 이야기하는, 내 숨겨졌던 자아가 밖으로 보여지는 과정이 반복 되면서,
자아 성찰 과정으로써 그림은 어떤 부분에선 마음의 치료약이 될 수 있다는 생각들,
이 생각은 그저 상상이었을 뿐이고 느낌으로 전달 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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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 Jin Sung ∥ my room ∥ Conte on cloth ∥ 130×97cm ∥ 2007



이 생각이 잘못 된 것이다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에서 난 내 안의
모습을 바라 보고 파고 들수 없는 이유를 발견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Yu Jin Sung ∥ blooming ∥ Conte on cloth ∥ 122×122cm ∥ 2007



안으로 파고드는 난, 스스로 내 안에 구속되어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안전장치도 없이 내 안으로만 파고 드는 것은 적극적인 개방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감추려 했을 뿐이다.
내 자아는 의식되는 나와는 다른, 또 다른 존재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듯 했다.
어슬프게 그것을 들여다 보기만 해서는 내 의식이 자아에게 먹혀 버릴 것 같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Yu Jin Sung ∥ a cripple ∥ Conte on cloth ∥ 97.2×130.3cm ∥ 2007


예쁘고, 아름다운 것은 사람들과 쉽게 이야기되고 함께 바라보고 하며 일상에서도 숨겨지고, 외면되기
보다는 그것을 알지 못하면 외면되기도 하는게 사회에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이 소외되는 것을 내 이야기의 범위를 벗어나 사회적이거나 경제, 현실등을 설명하며 이야기 할 수
는 없다. 그것에 내가 속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각적으로 난 그것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내가 속한 범위에서의 느낌 뿐이다.
내 생활 속에서 나는 사람들을 만나며 불안해 하고, 경제적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해 하고, 이런것들을
생각해야 하는 것을 불안해 한다.
혼자 있어도 불안하고, 함께 있어도 불안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Yu Jin Sung ∥ a faint hope ∥ Conte on cloth ∥ 80×120cm ∥ 2007

불안은 다양한 개인이 표현되는 평범함일 뿐이다.
개인을 정의하려 하는 것이 사회, 집단에 지독한 버릇인 것처럼, 온라인상의 블로그와 블로그를
사용하는 사람들(블로거)을 정의 하려는 것이, 사회적 틀 안에서 개인인 블로거를 일정한 틀로 구속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가 개인을, 사회적 개인이 개인을 구속하는 것이 일상화 되었고, 개인대 개인으로 소통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불안 바이러스 (Anxiety virus) 작업은 블로그의 공간에 그림들 하나 하나가 포스트를 대표 하는 것으로
그림과 개인, 개인과 개인의 소통을 위한 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Yu Jin Sung ∥ self alienation ∥ Conte on cloth ∥ 46×85cm ∥ 2007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Artist의 완성된 재현이라기 보다는 소재 로써의 자아발견, 자아 완성의 과정
이라고, 할수 있다. Conte의 원초적 소재로 다가서는 내안의 자아는 소통과 단절이라는 상충할 수
없는 어긋남을 지니고, 공간과 시간을 넘어 소통을 위한 고리를 남기고 있다.
불안 바이러스 작업으로 블로그에 기록된 그림들은 오프라인 에서의 제한된 공간과 단위적 시간을
넘어 블로그에서의 소통, 트랙백을 통한 개인 대 개인의 공개된 소통을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
불안 바이러스 작업은 그림이 완성되어 전시장에 공개되는 시점이 아닌, 오프라인과
온라인 공간을 통해 그림 과 개인의 소통이 쌓여가는 것으로 작업이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 성유진

다양한 이야기를 설명적으로 하는건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또한,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닐까? 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너무 한가지로 몰아져 있는건 아니냐? 는 말을 하기도 한다.

재미 있다는 말들,
무섭다는 말들
슬퍼서 울컥 한다는 말들...

콘테를 깍는 짧은 순간 발생했던 잠재된 기억, 손에 잡힌 콘테의 떨림으로 만들어지는 소리
이것이 내 그림 이라면,
사람들이 원하는 그림은 시신경을 타고 흐르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대안곤간 반디 엽서
Designed by 안혜선





이번에 선택했던 두종류의 천들은 생각 이상으로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있다.
광목종류에서 택한 천은 작년보다 두깨도 두꺼웠고, 밀도도 높아서 색에 깊이감을 표현하는데
조금은 더 수월했다.

주문해서 만들었던 A1 천의 경우 (사실 이름이 있긴 하지만, 판매되는 천이 아니라 A1 이라는 별칭을
사용하기로 했다.) 겉면과 뒷면이 다른 이중천이라는 특성을 살린 마감 비율을 적용할 수 있어서
마감을 더 쉽고, 견고하게 할수 있었다.
밀도가 높은 천이어서 작고 여린 선도 선명하게 표현되어서 전체적으로는 더 부드럽게 보여진다.

작업을 하면서 지금 내용들을 어떤 수치된 자료로 기록해 놓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천과 마감에 대한
비율을 수치량으로 기록을 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
50여점 정도 기록을 하고 나면, 마감에 있어서 재료에 비율을 어느정도 정확한 수치로 정해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감으로 작업을 하고 있어서, 천이 바뀌거나 콘테 색상에 따서서 마감할때
비율을 눈짐작으로 해야 했는데,
색상과 천에 대해서 계속해서 기록을 남기다 보면, 천과 마감에 대한 고민도 점점 줄어들 거라 생각된다.

새벽 작업이 많아지면서 샴비에 일상도 변해가고 있다. 이녀석은 아침 다섯시에 아침을 먹고,
일곱시에 잠이 들어선 열두시에 깬다.
잠자는 시간이 줄어드니 지도 힘이 드는지 살이 조금 빠진것 같다.

17일에 시작~... 오늘 그리고, 늦어도 21일까지는 첫번째 불안 바이러스 작업 준비가 끝나게 된다.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바라 보는 것 만큼 내 자신이 우울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고, 또 극악의 불안을 담고 있는 존재도 아니라서, ... 작업은 즐겁게 진행 되고 있다.
그리고, 웃는 일도 많았다.
무엇 보다, 트랙백과 덧글로 남겨지는 느낌들을 보면서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생각을 하고, 블로그에 들어와서도 생각을 하게 된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에 기뻐하기도 한다.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불안 바이러스를 전했던 작업으로 지금 이 작업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후 오프라인 공간에서 그림을 보게될 사람들 중에 과연 트랙백을 통해 들어오게 될지, 그건 아직 불확실 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고...
한달, 두달,... 아니면 몇 년뒤 트랙백을 통해 들어온다 하더라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 수록 의미 있는 작업이 될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때가 되서 내가 바라보게 될 각각의 그림들은 지금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닐테니 말이다.
(기대해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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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 이야기는 그림으로 눌려진 압축된 이야기들이다.
스스로의 속박과 구속, 이런건 아니다.
그림이 보여졌다는 것은 내 안으로 부터의 이탈;외출을 상상하는 것이다.


진행 = 흐름
누구나 볼수 있지만, 아무나 볼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불안 바이러스에 자신을 이야기 했던 사람들은 내 이야기, 내 그림을 선택되어 받아 볼수 있게 된다.
비공개로 올려질 내 이야기는, 불안 바이러스에 답변을 주었던 사람들에게만 열람할 수 있는 열쇠를 건내주고, 그들과 이야기를 한다.
시작은 이렇게 조용한 대화가 될 것이다.

준비
그림과 이야기 - 그림은 공개된 그림이 아니다. 낙서와 드로잉이 아닌 조금더 완성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으로 불안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개인에게 공개된다.
불안 바이러스에 답변을 보낸 사람들에게 다시 내 이야기를 전하는 거라 생각하면 적당할 듯 싶다.

그림이 블로그에 포스팅 되면서, 그림들은 제목 이외에 고유 트랙백 주소를 지늬게 된다.
각각의 포스트는 그림을 대표 하는 것이다.
불안 바이러스 작업은 지금부터 각각의 그림들, 각각의 그림들이 지닌 트랙백으로 진행된다.

블로그에서 보여지는 그림들은 내 이야기들이다. 이것은 일상에서 쉽게 하지 못하는 내 생각과 내 모습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 그림, 내 이야기를 본 사람들은 나와 마주하지 않으면서도 각각의 그림들이 지늰 트랙백을 통해 이야기를 할수 있다.
이것은 정지된 공간이 아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내 그림은, 대화 할 수 있는 연결고리, 트랙백 주소로 나와 연결 되어 있다.
시간과 공간은 중요하지 않다.

그림들 각각은 내 이야기이고, 내 모습이기도 하다.
난 그림이 지늰 트랙백을 통해서, 그림과 내가 존재하는한 트랙백이라는 고리를 통해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December 24th, 1978 ~ March 29th, 2007
http://eironeia.net
이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본다.

불안 바이러스 작업에 지난 3월 10일 답변을 주셨던 eiron 님의 블로그에는 답변글 다음으로
아래 짧은 문장 두줄이 마지막으로 남겨져 있다.
http://eironeia.net
eiron님은 불안 바이러스에 limit 라는 말을 전해 주었다.
"불안이야 말로 우리르 존재답게 하고, 찰나의 순간을 함껏 살아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http://eironeia.net

불안 바이러스에 답변을 주었던 몇몇 블로거분들은 블로그 접속이 되지 않고 있어서, eiron님도 블로그를
접었구나~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혹시 다른 곳 링크를 알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지막 글에 달린 덧글을 열어보고...

쓸쓸해 졌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어떤이가 남긴 이 말은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eiron 님은 아직 젊은 분으로 알고 있는데,
생의 모든 것이 의문이라는 말, 그말에 시간의 무게감이 느껴졌던 답변에 아직 내 이야기를 남겨지
못했는데,
아침이 오는 근처에서 eiron 님 블로그를 보며 한동안 시간이 멈춘듯한 적막감을 느꼈다.
아무 소리도, 느낌도 없이 내 시선은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불안 바이러스 작업에 첫 이야기를 기획중이다.
불안 바아러스 작업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트랙백과 태그를 놓고 의미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는
분들이 많아서 불안 바이러스 작업이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지 되물림 받는 일이 종종있다.
작업 이야기를 하는 경우 대부분이 미술과 관련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나도 그렇지만, 미술인들 중에는 블로그와 인터넷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 부분은 조금더 구체적인 설명이 더해져야 할 지도 모르겠다.
최대한 간결하게 텍스트를 빼고 싶었지만, 일단 트랙백을 모르면 전시 공간 내에서
트랙백을 보고 당황해 하거나 무시하게 될테니, 기획의도 자체가 무의미 해질것만 같다.

불안 바이러스 작업이 진행 되면서 지난 몇개월 동안 블로그를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며
나 이외 블로거들에게서 자신을 이야기하는 블로거를 찾아 다녔다.
내가 발송한 트랙백에 회신한 블로거들 중에는 사이트 주소를 남긴 경우와 남기지 않은
경우로 나눠 졌는데,
회신을 했던 블로거 분들께 불안 바이러스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더 구체적으로 전하고,
소통의 작은 단계를 만들어 갈 생각이다.
요즘 들어선 블로그에 소통이라는 단어를 적는 것이 참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좋은 모습, 단소리만으로 남아야 하는 것, 우호적이어야만 하는 것을 소통으로 몰아 가고
있는것은 아닌지... 블로그를 돌아다니면, 내가 찾는 블로거들은 점점 찾기 힘들어지고
소통이라는 단어가 눈에 자주 들어온다.

지난 주 작업했던 천은 젯소 처리가 잘 나오질 못했다.
두가지 첫으로 작업을 해 봤는데, 젯소처리에 실패를 했다.
결국, 다른 방법 2가지를 놓고 어제,오늘 고민 중이다.

빛,... 바로 불안 바이러스 작업을 8월 부산에서 전시로 기획하고 있다.
12월쯤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 8월로 당겨지면서
원하는 천으로 화판을 만드는 것도 서둘러 하다 보니,
지난주 고른 천에 젯소처리가 잘 나오지 않는 걸 보면서 이럴때 일수록 시간은 뚜련한
악의를 가지고 있다는걸 느끼게 된다.
그날 하루, 그 천을 위해 들인 시간과 비용에 우울해 했다.

내 Conte 작업을 받쳐줄 화판을 만드는 것은 일단 올해안에 해결할 과제로 남겨 졌다.
젯소에 맞는 천을 고르든, 천에 맞는 처리액을 찾든 두가지 모두 몇개월 이상 걸려야
할듯 싶어서다.

올해 사용할 화판은 동네 솜씨좋은 화방에 맞기기로 했다.
문제는 적당한 천을 고르는 것인데,...
작년에는 내가 직접 만들어서 최대한 천에 맞춘 화판 작업을 할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화방에
맞기는 것이고, 또 젯소처리를 하려고 하다 보니, 작년 사용했던 천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동대문 종합시장을 돌아다니며 천을 둘러봤는데, 샘플로 찍어온 3개 천을 화방 아저씨에게
젯소처리 가능 여부를 물었지만, 테스트를 해봐야 알수 있겠다고 말씀하셨다.
세개 천중에 두개는 단위로 끊어서 살수 있는 것이 아니라 롤단위로 판매하는 것이라...
한마 정도를 어떻게 따로 살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또, Conte 작업에 마음에 드는 천은 신제품이라 아직 판매를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데,
그 모델을 테스트해 볼수 있을지는 더~ 불투명...
작년에 100호짜리 화판을 짜면서 "목공이라도 배워둘걸~ "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의류쪽에 빠삭한 정보통을 알아 놓을걸~" 하는 생각을 하고 앉아 있다~~쯥~~

7월 말이나 8월초, 그리고 10월에 이태원과 홍대에서 전시를 하게 될듯 싶다.
"불안 바이러스" 작업을 올 12월 쯤에 개인전으로 진행해 볼 생각인데, 불안 바이러스 작업은
지난해 충무로에서 처럼, 개인전으로 나 혼자 기획해서 내용과 맞는 갤러리를 찾아서 전시해보고
싶다.
지금도 열리고 있는 바닥이나 초청전 성격으로 갑작스럽게 잡히는 전시같은 경우, 시간을 뜸들이며
푹~ 삭히는 맛을 내보이기 어려다고 할까~? , 작품 수가 중요한건 아니지만 올해에는 그리고 싶은
무작정 그림만 그리고, 100점을 채워 볼 생각이다.
어디 쌓아놓을 공간도 없지만, 정 놓을곳이 없으면 속초로 내려보내 놓더라도 말이다.
불안 바이러스를 불확실한 형태로 생각속에 진행에 고리를 잡아 놓았던것 뿐인데,
막상 그것을 시작하자고 마음 먹었을때 부수적인 생각들이 여러 고리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그림이 여러줄기로 나눠지는듯 싶다.
내가 생각해도 비슷하지 않으면서도 이어지는 생각이지만, 어느것이 우선적으로 기획되어져야
할지는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해 봐야 할것 같다.
역시 내 스스로도 완성체로 기획된 형태가 아닌 것을 놓고 뭐라 하는건 아닌것 같다.
적당한 기회에 정연두 작가님에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되고 있다.

난, 어린나이 이면서도 고지식한 것 일지도 모른다.

7월말쯤 생각되는 전시에 그림들은 블로그로 공개하지는 못할 것 같다. 솔직히, 불안 바이러스
작업에 대한 생각들도 오래전 부터 머리가 복잡한 상태다. 작업을 하면서도 정신이 벙~ 떠있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생각했다.
이번주엔 놀아야지 하고~ (핑계다.~)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녀 보고 , 동대문에 천가게를 몽땅 둘러봐야 겠다. 적당한 천이 어딘가
있을 것 같은데,...
이런 모습을 생각해 보니, 내 집에는 딱 두가지 타입으로 나눠지는 것 같다.
백수와 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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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샴비..
불안 바이러스-불안한 태그 작업을 위한 몇몇 구상을 시도하려고 한다.
Anxiety virus:: (불안 바이러스) - 당신의 불안을 태그로 표현 한다면 ,이 포스팅으로 트랙백으로 태그를 보내준 분들, 메일과 덧글로 남겨준 분들 개개인에게 내 트랙백을 한개씩 보내는 작업이 첫 단계다.

어느날 갑자기 트랙백을 받게 된다고 해서 놀라지 말길 바래요~~ 모두들...

트랙백을 더이상 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남은 기간은 대충잡아 2년뒤 2009년 여름 정도 까지로
생각 하고 있다.
도데체 사람들의 반응을 받아서 뭘 할려고 하는 거냐? 이 질문을 종종 듣게 되는데...
불안 바이러스 이야기를 하며 말했듯이, 우선은 내 이야기이고 나 혼자서는 할수 없는 이야기를
타인과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을, 그리고 ... 이것은 평범한 것이다 는걸 말하고 싶다.
핵심적인 부분은 그렇다.
그 표현이 그림과 사물, 그리고 기획된 모습일 것이다.

공개적이면서도 시각적으론 보여지지 못한 것이라 느낌만을 전하다 보니, 알수없는 무엇이 되어 가기도
한다. 알수 없는 무엇, 그리고 그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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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 인형을 깎는다 말했고, 완성체를 상상하는 당신은 상상될 수 없었다.

Anxiety virus (불안 바이러스) 진행중 단편적 느낌...
블로그로 연결되는 Link 고리와 메타사이트에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Link 들을 따라 들어 가는 작업으로 시작을 했다.
::Anxiety virus (불안 바이러스)::
어느 순간엔가 내가 전하는 말들이 오히려 내 스스로 구속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자로 풀어 놓기에는 한계가 있는 이 불안이라는 개개인의 불규칙적인 느낌을 이해 하는 것이 모두 솔직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관심사 밖의 주제에 대해서 대부분의 블로거들은 역시나 관심 밖이였다.
사회적으론 우울하거나 불안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일수록 공개적 표출의 공간인 이 블로그
집단을 사회적 집단의 확장으로 생각 하고 있는 듯 하다.
난, 사회적이라는 개념을 개인적 이란 개념보다 좁은 의미로 해석하려고 한다.
개인의 다양성은 사회적이란 개념이 담아 내지 못하고, 반대로 사회적 개념을 개인이 알아서 흡수하고 있으니 말이다.
블로그에서도 집단의 개념이 존재 하는 듯 하다.
독립된 블로그 각각은 유기적이면서도, 그 유기적인 고리를 집단화 하면서 개인 블로그의 공개적인 확장성을 해치고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 한다.

블로그를 둘러 보며, "이 사람에게는 불안바이러스를 남겨도 될까?" 하는 고민을 하며 기웃기웃 하는데,...
일단 느낌이 있는 블로그가 많지 않다는 것, 그건 내가 정보의 개념을 따라 다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블로거들이 정보와 이슈의 거대한 틀을 구성하고 있어서, 그 외에 속하는 블로거를 찾는 것이 쉽지가 않다.
한가지 방법으로는 유령처럼 눈요기만 하지 않고, 덧글을 통해서 아주 짧은 느낌을 주고 받는다.
그런 과정을 필요 하다면 몇번이고 반복하면서, 블로거에게서 느낌을 받아 들이고 그 느낌으로 불안 바이러스를 남길지 말지를 결정 한다.
집단도 블로거도 거대해 질 수록 수용에 폭은 좁아지는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글은 개인 작업으로 활용될 작품의 기획과 관련한 내용입니다.
이 글은 2007년 3월 6일 작성된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이글을 읽기 위해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트랙백으로 질문을 보내드렸습니다.
저는 회화작업을 하고 있는 성유진 [sung yu jin ]입니다.
제 임의로 블로거 분들께 트랙백이나 덧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하루 한두 시간을 블로그를 돌면서 느낌이 있다고 생각 되는 블로거 분들에게만 남기는 것으로, 블로거 분들에 공간에 임의적으로 끼여든 것이라, 제가 남긴 트랙백과 덧글은 삭제 하셔도 됩니다.
제가 찾고 있는 블로거 분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줄 아는 분들 입니다.
(개인적이면서도 공개적인 블로그들에는 개인이 느껴지지 않는 블로그가 많습니다.)

저는 제가 직접적으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개인의 불안 이라는 단어와 관련해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께

당신이 현재 불안해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이 질문에 당신은 자세하게 설명된 글로 이야기 해주셔도 되고,
핵심적인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해 주셔도 됩니다.

블로그(blog), 태그(tag)의 개념을 이해하고 계신 분들이시라면,
당신이 현재 불안해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에 답변을 자신의 블로그에 남기시고, 이 글로 트랙백(Track back)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이때 자신의 불안을 대표하는 태그(tag)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불안해 하는 사람들, 가난, 미래, 시간, 등등에 대해서 해결하지 못하는 사슬에 얼매여 있습니다. 이 사슬을 풀어가기 위한 과정중 가장 효과적인 약은 순간순간에 즉흥적인 감정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였습니다. 고독한 개인은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로 부터 벗어나길 원하면서도 곪아가는 덩어리들을 짜내지 못하고 불안해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바라만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안을 이야기 할 수 있는 태그(tag ; 대표단어또는 문장)를 사회적 개인 인, 불안을 숨기고 있는 당신에게 질문 합니다.

당신은 어떤 태그로 답변 하시겠습니까?

조금 딱딱한 표현이라고 생각 됩니다.
답변은 이 글에 덧글을 남겨주셔도 되고,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작성하시고 트랙백을 보내주셔도 됩니다.
이 작업은 8월까지 진행됩니다. 완성된 결과물 이라기 보다는 이어지는 과정일 거라 생각 됩니다.
여러분들의 불안을 대표하는 태그는 제가 타인에 느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연결 고리가 될 겁니다.
감춰지고, 숨겨지는 개인의 불안을 공개하면서, 불안을 일상에 일부로 이야기 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블로그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제가 블로그 분들께 질문을 남기고 있습니다.
답변을 보내주신 분들께는 몇개월에 한번, 또는 일년에 한번씩 다시 질문을 하게 될 겁니다.

텍스트로 표현해주신 여러분의 불안과 제가 표현하는 이미지는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본문글 : http://www.sungyujin.com/454]
트랙백 주소 : http://www.sungyujin.com/trackback/454
덧글로 태그만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덧글 장성시
참여해 주시는 분들에 닉네임,웹주소 등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태그만을 작업에 사용합니다.

여러분들이 주신 불안을 이야기하는 태그를 오프라인 공간에 내걸려는 것입니다.

::작업에 대한 부연 설명:: - Anxiety virus _ 불안 바이러스 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Work post
일상에 단절된 흐름,
단절되었다는 의미가 흐를 수 있다는 말자체가 모순이기도 하다.
사회적, 집단적 느낌과 논리로는 개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게 정설이라고 믿게되는 하루다.
의미를 확장하고, 포장하고를 반복하는 사람들에 사회성 때문에라도 사회적단절을 내 스스로
만들어 내고 싶기도 하다.
사회적 활동을 어떻게 하느냐 , 하는 것을 말하기도 전에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만으로도
좁디좁은 공간속에서 맴돌게 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내 자신을 구속하고, 사람들과 단절되어 가는 것이다.

사회적 소통? 사회적, 사회적,
상대적이기도 하고, 다양성, 쌍방향성을 모두 갖추고 있는 개인을 단순한 사회적 소통 이라는
의미로는 개인에 대한 소통 자체가 무의미 하다.
개인이 사회를 이해해 줄수는 있어도, 사회가 개인을 이해할 수는 없는거 아닌가?
그런데, 기본적 소통이 어려운 개인대 사회의 관계속에 사회적 개인을 만들어 놓고, 그 틀안에서
소통을 생각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단순한 생각이다.

개인에 대한 정의를 말하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고 본다.
개인이 개인을 정의 하는 것은 개인적이다.
사회적 의미로 개인을 정의 하는 것은 사회적인 것이라 객관성을 지녔다 할수 있지만, 객관성은
집단적 범위에 속하고, 집단은 개인이 아닌 사회적 개인으로 구성된 것이라 다양성을 담아내기는
어렵다.
개인은 상대적 다양성을 지닌 개인상대적 객관성 (단순함) 을 지닌 사회적 개인에 의미에서
,시작하게 된다.

개인과 사회적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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