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었던 전시를 기록하기 위해 포스팅을 남긴다.

전시 이미지 및 서문 - 네오룩 홍보자료 발취


김영실 개인展
공평 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번지
Tel. 02_733_9512
2006_0621 ▶ 2006_0627

김영실_장지에 분채_172×134cm_2001

김영실_장지에 분채_172×134cm_2001

 


새롭게 탄생된 이미지 조어(造語) ● 이번 전시는 김영실의 첫 개인전으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작업한 것이다. 대부분 대작들로서 장지에 분채재료를 위주로 하여 그려졌다. 5년 동안 그린 그림들은 하나의 드로잉을 시작점으로 하여 초기에는 민화적인 요소들이 등장하다 점점 자신의 세계로 빠져드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의 모습을 보이며 단계적 성향을 드러냈다. 필자는 그녀의 그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를 2001년부터라고 보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2001년 전의 작품들이 학습적인 태도로 일관된 것과 전혀 맥락이 다른 태도에서 접근한 것과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는 사연에서 뒷받침한다.

김영실_장지에 분채_148×78cm_2001

김영실_장지에 분채_148×78cm_2001



김영실_장지에 분채_209×148cm_2001

김영실_장지에 분채_209×148cm_2001


김영실_장지에 분채_209×148cm_2001

김영실_장지에 분채_209×148cm_2001



김영실은 서양화과로 들어가 1년 다니다 두 번의 학사경고를 받는 등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여 자퇴하고, 10년 만에 다시 복학했다. 복학 후 열심히 그렸지만, 모선생으로부터 “너의 그림은 시들은 채소다.”라는 비판과 졸업심사는 3차에 걸쳐 떨어지는 등 매우 힘든 과정을 겪게 된다. 학교는 겨우 졸업했지만 엄청난 실의에 빠져 자포자기에 이른다. 이후 방황하다 그 기억은 희미해지면서 새로운 분위기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대학원을 동양화과로 들어간다. 지나친 편견과 이성적/논리적 상황이 아닌 자유로운 노마드적 상황(동양적 사유)으로 놓이게 되면서, 이때부터 “될 때로 되라!”는 식의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 비로소 색다른 환경이 여백을 채우기 식의 필연적 상황이 아닌 몸과 사유가 움직여지는 대로 그려지는 허허벌판의 빈 놀이터가 생기게 된 것이다. 제도나 사고의 제약이 없는 그런 평온하고 자유스런 상황에서 가장 신체적 접근이 유용한 일종의 낙서가 시작되고, 그 낙서는 일기와 함께 조형적 언어로 김영실로 하여금 새로운 그림으로서 전환점을 갖게 된다. 낙서의 행위는 드로잉으로 전환되면서 형상성을 찾아갔다. 그러한 시도 중에 한 순간 옛날부터 즐겨 그렸던 민화적 요소와 자신의 내적충동으로 상상된 조어들과 섞인, 묘한 형상이 하나의 환영으로 눈앞에 드리워 그 형상을 바로 화폭에다 옮기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이의 연상 점차 자유분방한 자신만의 영역 세계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김영실_장지에 분채_201×277cm_2003

김영실_장지에 분채_201×277cm_2003



김영실_장지에 분채_139×104cm_2003

김영실_장지에 분채_139×104cm_2003



김영실_장지에 분채_291×208cm_2003

김영실_장지에 분채_291×208cm_2003



그렇게 그려진 그림들이 세인들로부터 어떠한 평가를 받을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힘들었던 경험들의 과정이 애초의 그림과는 아주 상반된 그림을 그리게 되는 작용을 했다. 미술의, 창작의 운명적 만남을 꾀하고자 했던 작가로서의 꿈과 욕망은 사라지고 대신 오히려 ‘그림’을 둘러싼 신화와 오독 그 자체에 상처를 내는 행위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다.<중략> ■ 이관훈

'A D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대 HUT 갤러리 방문기  (0) 2006.07.08
"Ego" 라는 사탕을 물다  (0) 2006.07.04
나를 알아 가는 것도 벅찰 뿐인데  (0) 2006.06.20
딱 하루 햇볕이 내리던 어제~  (0) 2006.06.16
쓰레기와 정보 사이  (0) 2006.06.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