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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프를 아시나요


마니프(MANIF). 매월 5월이면 예술의 전당에서 '마니프'라는 이름의 아트페어, 즉 미술시장이 열린다.
마니프는 95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8회를 맞이했다. 국내작가는 물론 외국작가들도 참가하는 국제미술
시장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한해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미술시장을 열어오고 있는 마니프 주최측의
근면성을 일단 칭찬할 만하다. 마니프는 불어 "Manifestation d'art nouveau international et forum",
"새로운 국제 예술의 선언(manif)과 포럼(forum)" 이라는 문장에서 따왔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아트페어'라 하면 화랑-갤러리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미술시장을 뜻하지만 마니프는 화랑이 배제된,
작가 스스로가 독립된 부스를 운영하는 '군집개인전' 형식을 띤다. 따라서 마니프는 미술시장인 동시에
미술전시라는 두가지 성격을 가진다. 화랑이 배제된, 작가가 직접 시장의 판매자로 나서게 된다는
마니프의 방식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실험적이고 독창적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마니프는 유일한 미술견본시장으로 첫출발을 했고, 기존의 작가-화랑-구매자의 기본적인 시장의
삼각관계의 법칙을 깨고 중매자 없이 작가-구매자의 1대1의 직매방식을 도입했으며, 기존의 호당
가격제와 이중가격제의 폐단을 없애고자 정찰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런 실험적인 방식 때문에
보수적인 화랑협회와 마찰이 있기도 했다.

마니프 백화점

마니프는 작가들의 종합시장인 동시에 전시장이다. 그러나 마니프의 성패는 결국 미술견본시장으로서
마니프이다. 결국 마니프의 전시의 형태는 시장에서의 전시형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시장 기능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마니프를 시장의 측면에서 그 장단점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마니프에 대한 어느 비평가운데 '작가중심의 마니프'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작가중심'이라는 전제는 '화랑중심'과 상반되는 맥락일 뿐, 관객중심(고객중심)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그것은 화랑을 통하지 않고 작가가 고객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행사의 주체가 "작가냐 화랑이냐"라는 문제는 미술시장에서 어느 주체가 더 효과적인가를
생각할 수 있도록 논의의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마니프의 작가중심의 운영방식이
미술시장에서 성공적인 모델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매우 긴요하다.

마니프는 기존의 소수, 특정 고객을 상대하는 제한된 화랑-갤러리의 중심의 한국미술시장에서
그 구매층과 시장의 규모를 넓혔다는 데에 그 의의를 평가받고 있다. 또는 대중적 미술견본시장의
등장에 초점을 맞춰 '미술의 대중화에 성공'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마니프는 제작자(작가)와
구매자(관객)를 직접 연결해주는 방식(이 방식은 "관객이 예술을 만들고 예술이 관객을 만든다"는
교류개념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을 통해 구매자들은 작품 혹은 상품에 대한 정보를 작가들에게
직접 얻을 수 있다는 점과 자주 문제가 되는 작품의 진위여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안정성을 확보해준다.

여기에서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관객을 만나는 작가들의 태도, 다시 말해 관객 혹은 구매자와의 대화,
상담의 방식이다. 사실 일반인들이 미술을 편하게, 친근하게 접근해 가는 일은 어느 정도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작가, 혹은 화랑의 적극적인 대화수용의 자세, 관객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하려는
태도, 충분하고 친절한 정보제공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과연 마니프 참가작가들은 그러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을까? 작가들에게 달변과 싹싹한 태도를 요구할 것은 아니지만 마니프가
미술시장이라는 점을 충분히 감안하면, 관객(구매자)입장에서는 그것을 작가들에게 기본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작가들은 시장판촉에 있어서 화랑보다는 경험이 부족하고 소극적인 경향이 짙기 때문에
고객관리는 물론 작품판매에 있어서도 화랑중심의 일반 '아트페어'보다는 효율성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가진다. 역설적으로 작가들이 그나마 마니프를 통해 시장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마니프에 참가하는 국내작가들의 명단들을 보면 시장경험을 쌓을 필요가
없는 이미 성공한 작가들이 많이 보인다. 화랑에 찾아가보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유명작가들이 또한
마니프에도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서 새로운 (국제)예술에 대한 '선언'이나 '포럼'을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마니프는 한국작가들이 공동 참가하는 외국의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국제미술시장에 대한 정보와
해외진출의 기회도 얻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물론 국내작가의 해외진출의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과정은 작가의 능력(언어소통, 준비노력 등)에 따라 그 성과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고, 마니프에 외국작가 이외에 전문커미셔너나 화상, 화랑관계자들이 얼마큼 그리고 꾸준히
방문하느냐에 논점이 생긴다. 자칫 외형적으로는 국제전, 국제미술시장을 표방하지만 결과가
'집안잔치'로 끝난다면 마니프의 이상과 목표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언론의 거품, 시장의 거품

[경향신문]의 이용 전문위원은 마니프전을 <新미술 향한 예술인의 연대>라고 홍보해주었다. 그것은
마니프 본래의 뜻-"새로운 국제미술의 선언과 포럼"을 자신의 언어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기대 내지는 희망의 반영에 불과하다. 2년전에 마니프를 직접 가보았고, 관련보도들을
살펴본 바로는 마니프에서 '신미술'에 대한 지향이나 예술인들의 '연대'를 찾거나 생각하는 일은
힘들다. 그것은 마니프도 희망하는 바이겠지만, 과연 지금까지 그 모토,
이상이 실현된 적이 있었는가?

마니프가 한국미술시장의 흐름과 형세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할지라도, 또는 침체의 한국미술
시장에서 한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마니프의 노력을 높이 사더라도, [서울경제]의 이용웅기자의
'세계적인 규모의 미술견본시장..' 운운은 잘못되었다. 현재까지 마니프에게 '새로운'이나 '세계적인'
수식을 붙이기에는, 지나치게 점잖고 무난하며 지극히 국내적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줄뿐이다.


또한 같은 기사에는 마니프의 작가공모전에 심사위원을 맡았던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제라르
슈리게라의 진술이 있다. 기사에 다르면 그(녀)는“마니프는 매우 대담하고 모험적인 방식의 견본시장”
이라며, 현대 미술시장이 갤러리에만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인 견본시장에서도 폭발적인
성장력을 보여줄 수 있음을 강조했다고 한다. (4월 29일자 서울경제) '대담', '모험'이라는 표현은
보통 불안정한, 과도기적, 미숙한 상태에 대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표현에는 무모함과
가능성, 실패와 성공이라는 상반된 평가와 예감이 공존하는데, 50%의 확률- 즉 유보적인 입장을
드러낼 때 종종 사용된다. 첫 회도 아닌 8회째 판을 벌인 마니프에 대해 '대담', '모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가 마니프를 과소평가 했거나 그 동안 마니프가 언론에 의해 과대 평가되었다고
밖에는 할 수 없다.

 슈리게라의 발언은 또한 한국미술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미술시장은 한마디로 '거품시장'이다.
자본(돈)과 실물경제를 기본으로 삼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미술시장에서 '거품'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작품값의 거품'을 거론한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바이지만 한국작가들, 특히 원로작가와
인기작가들의 작품가격의 거품문제는 국내는 물론 국제미술시장계에서 한국미술시장의 신뢰성을
떨어드리는 주요 원인이 되고있다. 마니프도 이 문제를 크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니프가
실험적으로 작품마다 가격표를 명시하고 정찰제 판매를 고수하려는 이유는 기존의 비합리적인
호당가격제와 거품가격을 인정하는 이중가격제의 폐단을 개선해보겠다는 취지로써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문제는 정찰제에서도 누가 어떤 기준과 방법으로 작품가격을 책정하느냐의
문제가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인다. 마니프에 참가하는 국내작가 다수 역시 외국작가들의
작품가격보다 높이 책정되어 결과적으로 작품판매률이 저조했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95년
마니프를 결산한, 당시의 중앙일보 <전시회로서는 성공, 국제미술시장으로는 실패>기사를 보면,

"......이번에 출품된 국내작품의 가격은 대부분 외국 것보다 높게 책정됐다. 첫 번째 행사라는 점을
감안해 저명 원로작가들이 5명 추가된 사연도 있지만 대체로 국내작가들의 가격은 외국에 비해
과대책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샘 프란시스 이후 인체에 대해 지속적이고 깊은 관심을
보여 관심을 모았던 세르비아 화가 블라디미르 벨리코빅의 3백호작품이 4천8백만원에 나왔는데
비슷한 지명도를 지닌 국내작가의 작품은 1억5천만원에서 최고 4억원까지를 호가하는 식이었다.
이에 따라 외국작가들의 작품은 비교적 양호하게 판매된 반면 고가의 국내작품들은 거의 팔리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

과연 그들이 책정하는 작품가격은 국제미술시장의 판도나 시세를 반영한 결과일까? 이것은 결국
호당가격제냐 정찰제냐라는 선택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해준다. 또한 호당가격제, 경매제, 정찰제
등의 가격제도들을 상호 비교, 그 장단점을 따지기 전에 한국미술시장에는 합리적인 작품가격의
설정방법 자체가 부재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호당가격제에서도 1호의 가격을 어떻게 책정되는지는
구체적이지 않았다. "부르는 게 값"인 시절, 감을 잡을 수 없는 가격책정방법이 현재까지도 작가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실정이다.

지난 97년 말 한국이 IMF 관리체제하에 들어간 이후 98년 한국미술시장은 그간 만성적인 문제점들을
한꺼번에 드러내면서 극심한 혼란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98년 미술시장의 붕괴는 마니프에도 영향을
끼쳤지만, 구조조정과 제도개선을 통해 거품을 빼고 합리적인 미술시장을 만들어보자는 전문가들의
여러 방면의 조언과 비판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미술시장은 별다른 반응과 노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무기력, 침체, 혼란 그 자체였다. 비판을 제기했던 이들도 현재의 한국미술시장을
다시 이야기 할 때면, 전보다 크게 달라진 것도 없고 나아진 것도 없다는 것이다. 대다수 화랑들은
여전히 특색이 없고, 전문경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며, 가격거품은 여전하며, 호당가격제는
유효하다. 한 때 논의가 활발했던 경매제도 아직 그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마디로 한국미술시장은 "거품속에 그대", "안개낀 인사동거리"이다.

시장과 미술

남대문, 동대문시장처럼 시장판은 시장판다워야 한다. 미술판이 시장판과는 다르지만 미술판에 시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미술판에서 시장다운 시장을 기대하는 것, 그러한 판을 만들어가려는
노력들은 중요하다. 마니프의 노력은 모두가 칭찬할 만하다. 단지 마니프가 좀더 시장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마니프에서 남대문, 동대문시장에서 느끼는 역동성을 맛보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마니프는 "새로운 국제예술의 선언과 포럼"의 정신에 준하는 운영방식과
적극적인 미술마케팅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마니프는 또한 젊어져야 한다. 다른 화랑들은 물론
보다 의욕적이고 창의적인 작가들과 꾸준히 대화하면서 마니프를 조직해 나갈 필요가 있다.

예술, 미술도 시장을 외면 할 수 없다. 시장이란 인간의 욕구가 상품과 자본을 통해 교환되는
공간이자 제도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것도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욕망이
교환되는 시장의 기능을 과소평가 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산주의사회가 유토피아라면 시장사회는
인간의 존재현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작가들이 장사꾼이 되라는 것은 아니다. 예술이 시장체제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아니다.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그 이해를 통해 예술가들은
그에 대한 대응방식과 생존방식을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때이다.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물질화되어 유통, 교환되는지에 대한 예술가들의 깊은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또한 자본주의 시장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조작하고 미의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지도 연구의 과제이다. '세계화' 속에서 인간
삶의 질의 문제를 끈질기게 제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의 영역이다.

'세계화'라는 구호는 시장의 세계화, 자본주의의 전지구화를 의미한다. 자본주의의 '세계화' 구호가
더욱 강력하게 들려오는 오늘날, 미술가들이 시장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 속에 어떤 모습, 태도로서
편입될 것인가를 고민하고 나름의 저항과 예술적인 실천적인 방법들을 강구해야 한다.

한국미술시장의 경우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래서 시장다운 시장, 시장의 제기능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의 상황에서 무엇보다 수요를 증폭시키는 장치의 개발이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한국미술시장은 그러한 관심과 노력, 협의의 태도들이 너무 부족하다.
미술시장에 전문인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미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부족과 작가들의
시장에 대한 인식부족이 더욱 근본적인 문제이다. 다시말해 많은 이들이 한국미술시장의 짧은
경험(비전문성)과 열악한 환경, 비합리적인 제도를 문제삼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우리에게(나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며, 그 질문에 답하는 내용들, 그 내용들을
교환하는 방식의 문제들이다.

무엇이 예술(작품)이며 무엇은 예술이 아닌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모든 물질적, 정신적인 추구의
대상들이 우리의 일상생활 속으로 어떻게 수용될 것인지. 혹은 위치할 것인지, 혹은 가능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문제. 그리고 그러한 예술을 어떻게 타자들과 공유 또는 교환할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작업이 근본적으로 중요하고 필요하다.
 

이명훈 /자유기고가, 베를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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